즉흥의 주체

©김지곤
즉흥Ⅱ(즉흥의 확장)
즉흥은 음악적 텍스트를 토대로, 그에 연주자 개개인의 주관과 기량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사실 대부분의 뮤지션 혹은 예술인에게는 즉흥의 꿈이 내장돼 있다. 어떤 뮤지션에게 그것은 최후의 꿈이다.
전체 음악에서 보자면 몇 소절 안 되는 부분이지만 그 매력은 엄청나다. 연주자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맛본 듯한 궁극적 행복감을 주는 작업이다. 본격 무대에서 즉흥을 구사하려면 상당 기간의 훈련이 쌓여야 한다. 즉흥에는 고도의 연주 기술은 물론 작곡 실력, 찰나의 착상을 현실화시키는 능력이 전제된다. 바꿔 말하면 즉흥이란 ‘짧은 작곡’인 것이다.
먼저 타인의 연주를 경청하는 작업이 전제돼야 한다. 내게 그것은 선배들이 펼치던 연주를 귀동냥하는 작업이었다. 가장 먼저, 나는 그것을 스윙 재즈를 하면서부터 짧게, 짧게 느꼈다. 당시 악보에 짤막짤막 있었던 빈 마디가 이를테면 즉흥 부분이었다. 그러나 댄스와 여흥을 목적으로 하는 스윙 재즈에서의 즉흥이란 5초에서 10초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 같은 스윙 즉흥 시절이 4년에서 5년 이어졌다.
이후는 비슷한 기간 동안의 딕시랜드 즉흥 시기다. 그런데 스윙과 다른 점이, 전체 구성에 항상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이다.
딕시랜드, 즉 뉴 올리언즈 재즈는 중저고음부 선율이 각자의 길을 따라 가는 음악으로, 다른 파트의 선율은 침범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전제된 것이었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는 즉흥이라 볼 수 없다.
업소에서 경쾌한 곡을 할 때, 이 같은 뉴 올리언즈 재즈식 즉흥은 단연 인기였다. 당시 함께 했던 사람 중 최창권씨가 나한테 유독 애착을 가졌다. ‘살짜기 옵서예’의 작곡자였던 그는 나를 찍어 자기 집에까지 데려 갔던 사람이다. 거기 가면 나는 꼼짝없이 딕시랜드 즉흥 파트너가 돼야 했다. 그렇게 열심이었으나 실제 무대의 빛을 보지는 못했다.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서였다.
나름 딕시랜드를 제법 했던 나는 클라리넷과 함께 딕시랜드의 트리오인 트럼펫, 트롬본 없이도 그 맛을 곧잘 냈다. 스윙 재즈 수업 시절 쌓은 기량 덕분이었다. 그 다음 접한 비밥은, 좋아했지만 워낙 어려웠다. 연주자에게 고도의 기량을 요구하는 비밥은 연주하고 나면 매우 후련했다.
그러나 내게는 그보다 1960년대 초 미군 부대에서 LP로 접했던 오네트 콜먼의 음반 Free Jazz 가 준 인상이 훨씬 더 와 닿았다. 그것은 신비의 세계였다. 이후 롤란드 커크패트릭, 파라오 샌더스, 후기의 존 콜트레인, 에릭 돌피 등을 파면서 그 세계에 깊이 빠져 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제리 모건이나 스탠 게츠 등 쿨 재즈도 그렇게 좋아했다. 클래식적이고, 보다 정의됐고, 간결하게 진행되는 그 같은 재즈도 매력적이었다. 당시 나의 그런 행동을 업소에서는 못마땅해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파고들던 종류의 재즈는 춤 반주와는 거리가 멀었으니.
나는 그래미상을 단골로 타가는 조 핸더슨처럼 업소에서 좋아하는 감미로운 음악은 되도록 기피했다. 눈엣가시가 따로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내가 맡은 역할 때문에 나의 ‘공부’를 업소측에서는 묵인했다. 그렇게 업소 생활을 10년 해나가다 사회 분위기로 음악인에 대한 대우가 나빠지니 더 이상 거기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그 생활을 과감히 청산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내가 약사라 생활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는 현실적 이유가 컸다.

즉흥과 나의 프리 뮤직은 어떻게 다른가! 문제의 본질로 향하는 질문이다.
재즈보다 즉흥을 더 우선시하는 세계가 프리 뮤직이다. 재즈적 즉흥이 비트(리듬) 안의 즉흥이라면 프리 뮤직은 즉흥 속에 리듬을 구사한다. 재즈보다 더 자유스럽고 제멋대로인 음악이다. 프리 재즈가 재즈에 바탕을 둔 아방가르드라면, 프리 뮤직은 근저의 영역이 넓다. 보다 열려있는 세계다.
실제로 나는 여러 양식의 예술과 자유스럽게, 자연스럽게 만났다. 무용으로는 부토의 인다나카, 현대 무용가 야마다 세스코, 한국의 남정호 등을 꼽을 수 있고, 문학 쪽은 일본 시인 히라이시 가즈코의 자작시 낭송과 함께 연주를 펼쳤다. 미술 쪽으로는 한국 현대 회화의 이준형을 비롯해 내한한 일본의 서예가나 화가 등과 즉흥 무대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