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환 — 어떤 영원의 찰나

강태환의 즉흥은 구원의 형식인 동시에 영원한 전위의 정신이되었다.

In a nutshell

    어떤 영원의 찰나

어떤 영원의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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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곤

2017년 10월 홍대앞 벨로쥬. 더 트리오가 본격적 활동을 공식 선언한 날이다. 유튜브에 ‘Legend’라 소개되는 거장이 두 세대는 떨어진 객석 앞으로 현전했다. 용케 알고 찾아 온 관객은 놀랍게도 모두 20대. 그들은 유튜브의 스타 강태환의 미학적 결론을 확인하는 행운을 누린 셈이다.

트리오! 강태환이 가장 미학적이라 했던 그 형태다. 강태환은 자기의 약속 또는 미학적 결론을 지킨 것이다. 나아가 맨 앞에 정관사 ‘The’를 달고 나타나 존재의 유일무이성을 천명하는 듯 했다.

일본 재즈계가 ‘슈퍼 롱 톤(super long tone)’이라 했던 그 유명한 순환 호흡이 왕년의 전성기와 흡사한. 아니, 보다 풍성하고 유장한 소리로 변신해 왔다. 그 격렬했던 텅잉은 감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음에서의 긴장에서 조금도 힘에 부친다고 느낄 수 없었다.

셋이 다시 먼 길을 떠난다…. 강태환의 예술적 결정체임이 그대로 직감되었다. 여전히 즉흥의 세계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완성 형태일지도 모르며 나아가 끊겼던 길이 새로 시작되는 길(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면 ‘숲길’)이라는 사실을.

그 날의 무대는 향후 이어질 활동의 작은 예고편이었다. 이들의 해묵은 숙제를 푸는 자리였다. 오랜 반성의 결과였다. ‘작품을 남기자. CD(혹은 LP)를 만드는 데 너무 소홀했다. 곡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치명적인가.’ 특히 작고한 타악 주자 김대환과의 본격 기록물이 전무하다는 사실은 허망하기까지 하다. 어쩌다 녹음분이 하나 남아 우연히 CD에 수록된 것이 Korean Free Music이라는 문패를 달고 음반화 되기는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을 중심으로 세우지 못한 발췌 음반에 지나지 않았다. “작품은 없고 현상만 있다”는 뼈아픈 말만이 강태환 음악 위를 배회하고 있었던 터였다.

트리오 무대는 이후 3달 한 번 간격으로 이어졌다. 늘 해온 패턴 하다 한 사람이 딴 테마를 쓱 던져 주며 대화를 풀어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타인의 반응을 기다린다. 향후 그들의 연주는 새로운 차원을 지향한다. 작품 번호 매기기(opus)는 안중에 없다. 그들의 음악은 고정-박제화된 클래식을 안중 두지 않는다는 첨언.

다시 한 번, 강태환의 즉흥은 구원의 형식인 동시에 영원한 전위의 정신이 되었다. “내 자랑은 않겠다는 것, 하느님께 드릴 예술을 하자는 것이다.” 대중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친절해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그가 대중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친절해 지고 싶은 마음이 그에게는 전혀 없었다. 그가 남긴 말 중 문제의 핵심에 가장 근접하는 명제가 있긴 하다. 1990년대까지 가끔 들을 수 있었던 말로, “미래의 대중 음악을 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대중 음악은 구원의 형식으로, 즉흥이라는 탈 것에 실려 끝없는 탄생의 항해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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