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 바이더벡
루이스 암스트롱 재즈 트럼펫의 완벽한 반명제가 있었으니 레온 빅스 바이더벡이 그 주인공이다. 뉴올리언스 트럼페터들이 열정에 넘친 연주를 뽐내듯 펼치고 있을 때, 바이더벡은 자기 억제와 서정성으로 승부를 걸고 있었다. 종소리 같은 특유의 음색으로 표현해 낸 것은 기쁨의 정서였으며, 뽐내듯 화려한 그 솔로에 바이더백은 장인적 솜씨로 우아하게 화답했다.

Source - Cropped version of File:Wolverine orchestra 1924.jpg, showing only Bix Beiderbecke. Original source - retouched by Hans Eekhoff, scanned from a copy obtained from John Vincent, 퍼블릭 도메인
1923년 그는 작품 The Wolverines에서 독보적 귀재였던 그는 20대 중반으로 접어들더니 흥행 밴드였던 찰리 스트레이트 악단에서 음악적으로 망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길게 보아 예술적 발효의 기간이기도 했는데 빅스는 남는 시간이 되면 루이스 암스트롱, 지미 눈 같은 시카고의 거물급 흑인들의 재즈를 경청했던 것이다. 25년 그는 쟝 골드켓이 이끌던 악단에 들어가 젊은 색소폰 주자를 만나게 된다. 프랭키 트룸바우어라는 그 청년은 골드켓 휘하 악단의 리더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세인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 하던 아드리안 롤리니 빅 밴드로 소속을 옮긴 뒤 폴 화이트먼의 휘하에서 합쳤다.
어느 젊은 코넷 주자가 마지못해 더 큰 악단으로 옮기다 보니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그 와중에 그들은 트룸바우어를 훌륭한 재즈맨으로, 빅스 바이더벡을 특출한 재간꾼으로 자리매김 하게 한 기획 음반을 시리즈로 발표했던 것이다. 특정 작품을 수록할 때 취입 회차(回次,take)를 일일이 밝힘으로써 각 테이크마다 바이더벡은 서로 달리 연주하는 재능을 발휘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I’m Coming Virginia와 Jazz Me Blues 같은 곡에서 다른 테이크들을 나란히 수록해 재즈란 매 연주마다 다르게 만들어 진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인 셈이다.
말년으로 접어들면서 바이더벡은 알콜 중독으로 피폐해졌는데 화이트먼의 우호적 태도는 한결같았다. 폐렴으로 이승을 하직하던 때 그의 나이는 겨우 스물여덟이었다.
바이더벡의 트럼펫은 에멧 하디Emmet Hardy라는 백인 트럼펫 주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게 거의 정설이었지만 루이스 암스트롱 같은 흑인 대가들의 연주도 경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