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먼 호킨스 (1)

재즈 뮤지션이 일단 자기 스타일이란 걸 구축하게 되면 변화를 시도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물론 재즈에 어떤 공헌을 할 수도 있겠지만 자기 방식을 위해 쌓아 온 방식을 벗어나지 못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같은 통념에서 예외적 케이스가 없진 않은데 베니 카터, 재키 매클린, 소니 롤린스가 그 후보자로 꼽힐 수 있겠다.
그 리스트가 챙기지 못한 인물이 바로 콜먼 호킨스로 공교롭게도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재즈 연주라는 기예를 최대치로 추출해 올려 어떤 뮤지션들과 협연하든 능란한 연주를 펼쳤던 것이 실수였다면 실수랄까. 잊지 말아야 할 점이라면 그의 연주가 무르익었던 시절, 그는 두 개의 장르를 통달한 자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기량을 과시했다는 사실이다.
다섯 살에 피아노 레슨을 시작하고 첼로로 바꾼 뒤 아홉 살이 되자 테너 색소폰을 잡았다. 열 여섯에 캔자스의 워시번 대학에서 고급 음악 교육을 받고 지역의 프로 음악인 생활 1년만에 악단 Mamie Smith’s Jazz Hounds와 인연을 맺더니 1923년까지 순회 연주 생활을 이어갔다. 1년이 채 안 돼 명성이 자자하던 플레처 핸더슨 오케스트라에 들어갔는데 애초부터 그의 연주가 주목받은 건 아니었다. 당시 인기 끌었던 혀치기(slapped tongue) 주법이 그의 애용물이기도 했는데 솔로 라인 구축이란 관점에서 아직 매끄럽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Tozo’와 ‘I’m Feeling Devilish‘ 등 1927년과 그 이듬해의 연주에서 그만의 장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설교하듯 장광설을 늘어놓는 테너 색소폰이 인상적인 ’Hello Lola‘와 함께 ’One Hour‘로, 호킨스표 낭만주의가 첫선을 보인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