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커비

플레처 핸더슨 밴드에 스무 살 나이로 튜바 주자로 입단한 커비는 악기를 베이스로 바꾸고는 30대 내내 헨더슨, 칙 웹, 럭키 밀린더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1937년에는 오닉스 클럽의 캄보 리더를 맡아 트럼펫에 프랭키 뉴튼, 알토 색소폰에 피트 브라운 같은 스타들과 연주했다. 얼마 안 가 그들은 찰리 셰이버스, 러셀 프로코트와 자리를 바꿨는데 클라리넷의 버스터 베일리, 피아노의 빌리 카일, 드럼의 오닐 스펜서까지 합류해 ‘지상 최고의 소편성 라인 업(The Biggest Little Band In The Land)’이라고까지 불리었다. 그 기간 동안 그들에게는 “날렵하고 끝내주게 편곡된 소 그룹 음악의 달인”이라는 불가침의 명성이 뒤따랐다.
특히 둔중한 베이스를 날렵한 악기처럼 다루는 커비의 솜씨는 발군이어서, 그로부터 영감을 받은 밴드 멤버들의 아이디어가 끊이지 않았다. 커비의 아내 맥신 설리번의 빼어난 노래 솜씨와 찰리 셰이버스 작곡의 ‘Pastel Blue’와 ‘Undecided’ 같은 작품은 그 같은 접근이 올바른 선택이었음을 입증했다. 특히 그리그의 ‘페르귄트’ 중 ‘아니트라의 춤’과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6중주 등을 재즈로 되살려낸 이들의 창의력에 청중은 열광했다.
1942년의 멤버 교체로 이들의 대중적 인기는 기울기 시작했다. 46년 가수 사라 본의 영입으로 반짝 효과를 보는 듯했으나, 잠시의 성공에 취한 커비는 아예 짐을 꾸려 캘리포니아에 눌러앉아 6중주단을 꾸려 지나간 영광을 재현해 보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