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런스포드

리더가 참아 주었으니 망정이지 런스포드 오케스트라의 성공을 두고 “훈련된 물개 악단”이라는 뒷말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장본인 런스포드는 이를테면 완벽주의자로 실용 음악(BMus Degree) 학위까지 받았던 자. 대학 방학 때는 윌버 스위트맨과 엘머 스노든의 색소폰 주자로 활동하더니 졸업 후 사설 음악 교사로 활동했다. 에드윈 윌콕스, 윌리 스미스 등 재주꾼들을 키워 자기 악단을 만든 것이 1929년이었다.
4년 뒤 뉴욕으로 무대를 옮긴 그들은 이듬해 코튼 클럽에서 캡 캘러웨이의 바통을 이어 받았다. 듀크나 카운트의 악단이 유행하던 당시로 보자면 매우 독특한 악단이었다.
통상적인 수련 과정을 거치지 않아 여타 악단에 비해 트럼본, 트럼펫, 색소폰의 구성과 강세나 즉흥의 위치가 달랐다.
재기 넘치던 편곡자가 있던 사이 올리버 밴드에서는 뉴 올리언스 재즈가 스윙 재즈의 어법으로 변신을 쉽사리 이뤄냈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틀린 구석은 없는 말이다. 그러나 밥 크로스비의 재즈에는 빅밴드 딕시랜드풍의 감흥이 배어 있었던 것이다.
Stomp It Off나 For Dancers Only는 철 지난 유행가였으나 뉴 올리언즈 일대에서는 파트별 협연과 균형 유지용으로는 여전히 유효했다.
Swanee River는 리듬 섹션의 역할을 명백히 규정해 주는 표지였으며 그 유명한 런스포드 댄스 템포를 명확히 보여준 작품은 Pigeon Walk였다.
색소폰 파트 밴드가 가졌던 또 하나의 특징은 Sleep Time Gal에서 보여주었듯 사이드맨들이 박자에 맞춰 그냥 몸을 흔들어 대는 정도 이상으로, 시각적으로도 빈틈이 없었다는 점이다.
윌리 스미스가 당연히 스타 독주자였겠지만(밴드의 이름으로 나온 레코드의 절대 다수에서 그의 이름이 찍혀 있다) 그 외에도 에디 탐킨스, 에디 더햄, 트러미 영 등 인상적인 솔로이스트들이 발견된다.
그러나 런스포드는 인색한 사람이어서 40년대 중반이 지나자 보수에 불만을 품은 단원들이 한둘씩 빠져 나갔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나아지긴 했으나 내리막길에 오른 음악을 어찌 하지는 못 했다.
카운트 베이시가 했던 말이 있다.
“그 사람들이 밤새 하는 거라곤 로큰롤이 전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