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노보 — 비브라폰의 황제

업템포 곡의 대명사였던 ‘I Got Rhythm’에서 그가 보여준 박진감 넘치는 연주는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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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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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부터 비브라폰에 탁월하긴 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실로폰의 황제라는 소리를 듣기까지 케네스 노빌에게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쿠스틱한 실로폰이라면 독보적이라는 평을 듣긴 했지만 전기적으로 증폭된 쪽에서도 압권이었다 해야 할 것이다.

본래 피아노에서 시작했으나 재학 시절 실로폰으로 바꿨다. 열 일곱 나이에 중서부에서 마림바 악단을 이끌던 그는 폴 애쉬 악단으로 들어갔다. 폴 화이트먼과 활동중이던 30대 초반에 밴드의 가수였던 밀드레드 베일리와 결혼했다. 노보의 역할은 ‘스윙 커플 Mr And Mrs Swing’이란 예명으로 활동하던 부부의 낭만적 무대를 경쾌하고도 흥겨운 음악으로 북돋워 주는 것이었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 다양한 편성의 악단을 이끌던 그는 1943년 비브라폰에 안착했다. 2년 뒤 라이어넬 햄프턴 대타로 비브라폰 자리를 이어 받고 베니 굿맨 6중주단에 들어온 그는 햄프턴과는 천양지차의 스타일로 관객을 휘어 잡았다. 업템포 곡의 대명사였던 I Got Rhythm에서 그가 보여준 박진감 넘치는 연주는 충격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스윙감과 압도적 연주력이었다.

노보는 활기 넘치던 우디 허먼 악단 시절에서도 성공적 1년을 보냈다. 동서부 양안을 휘저으며 기타리스트 탤 팔로우와 베이시스트 찰스 밍거스와 레코딩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54년 유럽에 상륙한 그에게 베니 굿맨이 1959년과 1961년에 손을 내밀었다. 1960년대 들어 심각한 난청에 시달린 그에게 영국 콘서트는 큰 후유증을 안겼다. 그러나 연주력에 손상을 입지 않아 Sunday, Confessin 같은 전성기 시절의 작품을 남겼다.

이후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친 그는 오랜 동료 탤 팔로우와 활약을 이어, 1980년대에는 뉴욕 재즈 페스티벌의 단골 출연자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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