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립스 페이지

수수께끼로 둘러싸인 재즈맨이라고도 여겨졌을만큼 오란 새디어스 페이지 Oran Thaddeus Page는 베시 스미스, 마 레이니, 아이다 칵스 같은 윈조 재즈 싱어들의 반주는 물론 비밥 생성의 열기로 뜨겁던 민튼즈 플레이하우스에서의 격렬한 잼 세션 대열도 버겁지 않을 정도로, 종잡을 수 없었던 최상급의 블루스 트럼펫 주자였다.
소년 시절 색소폰류에 매달려 보았으나 성과를 내지 못 했던 그는 열 두 살에 트럼펫으로 바꾸더니 엄청나게 전진했다. 앞서 나온 블루스 싱어들은 TOBA(Tough On Black Artist•흑인 연예인 차별 관행)에 묶여 있었지만 1928년 월터 페이지와 인기 밴드 블루 데블스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를 계기로 재능이 꽃핀 페이지는 2년 뒤 캔자스 시티의 베니 모튼에게서 부름을 받았다.
밴드와 자주 동행하면서 페이지는 불 같은 연주와 놀라운 콘트롤로 일약 주목을 받게 되었다. Toby에서의 돌격하는 연주, 암스트롱을 방불케 하는 Moten Swing에서의 솔로, New Orleans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연주는 모튼이 별세한 1935년 직전의 옛 시절로 청중들을 데려가는 듯 했다.
페이지는 1년 동안 단기 계약으로 카운트 베이시와 일하고는 이듬 해 뉴욕으로 옮겼다. 1937년 자기 밴드를 만들고는 암스트롱을 독점 계약으로 묶어 두고 있던 공연 계약 업자 조 글레이저와 관계를 맺었다. 그럼에도 Song Go Out Of My Heart와 I Let A Song Go Out Of My Heart 같은 곡에서 호평을 얻은 데다 립스의 암스트롱 풍 트럼펫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었다.
1938년, 모튼 시절을 추억하자는 페이지의 전략이 시작되고 뉴욕 카내기홀의 Spiritual To Swing 무대, 왕년의 명곡 Blues With Lips를 아우르는 업 템포의 블루스 트럼펫이 뉴욕의 밤하늘을 달궜다. 흑인 차별의 악법 짐 크로우의 뒤끝이 횡행하던 시절, 음악적 호평에도 불구하고 백인 밴드의 유일한 흑인이었던 그에게 쏟아지던 눈총은 상상을 초월했다.
시드니 베셰 킹 재즈 시리즈로 클럽 민튼즈에서 울려퍼지던 Blood On The Moon의 주인공은 진정한 블루스의 거장, 페이지였다.
1949년 유럽 땅을 처음 밟은 페이지는 죽기 전인 54년까지 정기적으로 유럽 땅을 밟았다. 암스트롱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나 현대에 끼친 영향면에서는 그와 비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