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러싱 — 블루스의 재주꾼

빅 밴드 앞에서 블루스를 왜장치듯 불러제끼는 재주라면 제임스 앤드류 러싱만한 재주꾼이 없었다.

  • Jimmy Ru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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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y 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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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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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밴드 앞에서 블루스를 왜장치듯 불러제끼는 재주라면 제임스 앤드류 러싱만한 재주꾼이 없었다. 그처럼 은근히 파고드는 창법은 가수의 진가를 꺾어뜨리기 십상이다. 러싱은 어떤 크기의 밴드건 능란히 스윙해 내는 보컬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일찍이 서해안 도시에서 주로 젤리 롤 모튼의 반주로 가수로서의 잔뼈가 굵었는데 1925년 베이스 주자 월터 페이지가 있던 빌리 킹 악극단과 활동하면서 고향 땅이던 오클라호마로 돌아왔다. 1927년 페이지가 있던 블루 데블스로 들어와 2년 뒤 음반 데뷔를 했으나 그의 음악 이력 중 중요했던 베니 모튼과의 작업이 시작되었던 것은 1929년이었다.

작품 New Orleans는 즉흥이란 문제를 보는 러싱의 관심이 루이 암스트롱이나 아트 테이텀에 비견될 만큼 도저히 제어될 수 없는 본능의 차원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1932년의 목청은 1955년의 그것에 비교해 거의 흡사하다는 중평이었는데 거기에는 일단 스스로 만족한 스타일이라면 변화를 모색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있다.

모튼이 세상을 뜨자 카운트 베이시 휘하로 간 러싱은 1848년까지 스타로 대접받았다. 스타일 간의 이상적 융합이 거기서 이뤄졌다. Exactly Like You에서 보컬이 정점을 향해 치닫는 과정. London BridgeGeorgia에서 섬세한 조각들이 곡을 빚어가는 모습, 러싱의 보컬이 밴드의 합주와 어우러지며 정점으로 치닫는 모습이 인상적인 Sent For You Yesterday 등은 음악이 생성되는 현장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저 같은 예술적 순간들은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베이시와의 결별 이후 러싱은 쇠락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베니 굿맨, 해리 제임스, 에디 콘돈 등과 번갈아가며 작업했지만 별세 전 15년을 함께 한 사람은 벅 클레이튼이었다. 트럼페터 클레이튼은 1955~6년 악단 멤버들을 일일이 고르는 노력으로 Odyssey Of James Rushing Esq를 연주했고, 1858년이 지나서는 It’s A Sin To Tell A LieSomeday Sweetheart를 직접 편곡했다.

러싱의 노래를 새 음반으로 듣게 된 것은 1971년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은 최고의 작품으로 Bei Mir Bist Du Schön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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