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디 윌슨

1929년 데뷔한 시어도어 쇼 윌슨은 7년 안에 스피드 웹, 억스타인 데이트, 루이스 암스트롱, 지미 눈, 베니 카터, 윌리 브라이언트 같은 리더들과 작업했다. 모두 나름 대가였던 만큼 윌슨도 각각이 요구하는 음악적 색채에 부응하다 보니 베니 굿맨 악단에 발 들인 1936년 무렵에는 고도의 기량을 갖춘 뮤지션이 되었다. 감쪽같으며 청중을 파고드는 현란한 타악 실력은 굿맨 악단의 속도감 있는 빅 밴드 곡 China Boy나 Nobody’s Sweetheart 같은 곡과 소편성 재즈 트리오 작품들에 녹아들었다.
윌슨의 특기는 정서적 교감에 호소하는 유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칵테일 바 뮤지션이라 비난받을 때도 있었을 만큼 데면데면한 연주를 들려주긴 했다. 뮤지션으로서 그의 경력에서 정점으로 기록되는 것은 (우연한 사고 같은 일이긴 했으나) 빌리 할러데이의 음악 감독 일을 맡게 된 사건이었다. 여하튼 간에 그들은 레이디 데이의 풍성한 음악적 재능은 물론 테디 윌슨이란 뮤지션의 풍부한 재능과 감성을 새삼 발견했던 것이다. Mean To Me, More Than You Know, Sin To Tell A Lie는 보석이었다.
1938년 카네기홀에서 있었던 재즈 콘서트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데 이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교육과 스튜디오 녹음에 매진했다. 명반으로 기록되는 1956년의 Prez And Teddy에는 그의 명연주가 담겨 있으며 그 시기에 행했던 클럽 연주들은 베니 굿맨과의 콘서트, 일약 홍보된 1962년의 러시아 순회를 비롯해 이어질 활약의 예고편이었다. 밴드 내의 일부 잡음에도 불구하고 투어는 계속되어 전설적 재즈맨의 무대는 유럽, 남아프리카, 일본, 호주에서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