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콜트레인과 온네트 콜먼 — 50년대 재즈 실험의 두 거인과 빛나는 별들

50년대 재즈는 마일스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이 선법 시대를 열며 화성 진행의 틀을 깨고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히 '음의 파편'으로 불린 콜트레인의 압도적인 연주는 재즈의 주류를 형성했다. 하지만 온네트 콜먼은 이에 맞서 '선율 즉흥'과 '자유 형식'을 내세우며 재즈의 또 다른 혁신을 이끌었다. 이 두 거인의 빛나는 실험 정신은 1950년대를 재즈 역사상 가장 뜨거운 혁신의 시기로 만들었으며, 1960년대 '프리 뮤직' 운동으로 이어져 기존 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사회적 이념까지 담아내는 '이념적 무기'로서 재즈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한다.

In a nutshell

    존 콜트레인과 온네트 콜먼 — 50년대 재즈 실험의 두 거인과 빛나는 별들
      이 시기를 대표하는 뮤지션들1960년대

존 콜트레인과 온네트 콜먼 — 50년대 재즈 실험의 두 거인과 빛나는 별들

그즈음, 밥(bop)을 창도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던 마일스 데이비스가 공백을 깨고 나와서 자기 고유의 어법 탐색에 나섰다. 그는 색소폰 주자 존 콜트레인과 힘을 합쳐 ‘선법(旋法) 시대(modal era)‘를 열었다. 그에 따라 종래의 화성 진행(chordal progressions) 지상주의가 일거에 혁파되었다. 그들의 선법(mode 또는 scale)이 코드 개념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 새 기법, 또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재즈의 주류로 올라서게 되었다. 데이비스는 실로 혁명적인 음악적 도구를 개발한 것이다.

그러나 그 운동에서의 최고수는 데이비스가 아니라 존 콜트레인이다. 강력한 그의 연주는 새로운 지평을 펼쳐 보이는 ‘어떤 그 무엇’을 내포하고 있었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간단한 모티프라도 콜트레인이 연주하고 나면, 제2, 제3의 새로운 선율로 변주되어 살아났다. 그의 비범한 연주를 지칭하는 용어가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음의 파편(sheets of sound)‘이란 말이 그것으로, 마구 난사하는 듯 엄청난 그의 속주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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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라드에서 아방가르드까지, 재즈의 전 영역에서 각각 최상급의 연주를 들려준 존 콜트레인. 보통은 테너 색소폰 주자로만 알려져 있는 그가 능숙하게 다룬 악기는 테너 색소폰 외에도 소프라노 색소폰, 베이스 클라리넷, 플루트까지, 리드(reed) 악기족 전체를 포괄했다.

재즈에서는 한 명의 연주자가 저렇듯 여러 악기를 다루는 일은 보편적이라 해도 좋다. 거기에다 콜트레인처럼 작곡 능력까지 겸비한 아티스트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 큰 흐름과는 별도로, 자유의 소리를 찾아 나선 진취적 연주인들의 독립적 흐름들도 있었다. 콜트레인의 그 기법도 결국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형식, ‘또 하나의 질곡’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하고 나선 일부 연주인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 같은 반작용은 재즈사에서 끊이지 않는 위대한 ‘물갈이’의 전통이다.

그 지각 변동의 진원지는 온네트 콜먼이라는 알토 색소폰 주자였다. ‘재즈의 거인’ 콜트레인의 ‘독주(獨走)’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대다수 연주자들이 콜트레인보다 재능도 직관적 통찰력도 없는 것이 현실인 바에야 결국 ‘우리도 소리 한번 질러보자’는 것이었다. 콜먼 진영은 오래지 않아 하나의 거대한 세력으로 자라났다. 그들에 의해 재즈는 ‘즉흥’,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한다면 ‘선율 즉흥(melodic improvisation)’이란 기치 아래 다시 결집했다.

재즈는 뉴올리언스 시대를 벗어나 비밥과 스윙 등으로 발전해 오면서 ‘한 천재적 개인, 즉 비범한 스타일리스트가 선도하는 음악’의 성격이 짙어져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각자 본연의 자유를 찾아 나서자는 것이었다. 최소의 단어로 그 음악의 이름을 지어보라는 문제가 있다면, ‘자유 형식(free form)’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이제 재즈의 관건은 귀에 얼마나 선뜻 들어오는 유려한 선율이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새 음악에서는 선율들이 모두 각각 균등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대접받았다. 그것들이 병치되고 혼합되어 또 하나의 새로운 선율을 만들어낸 것이다. 화성 체계가 일거에 폐기되었다. 음악적 항해가 실패했을 경우에 돌아와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항구(港口)가 없어진 것이다.

그들 중 피아니스트 세실 테일러가 선택했던 방식은 더욱 더 급진적이었다. 그가 그 실험의 극에 다다랐을 때, 그의 재즈는 아예 방종에 가까운 것이기도 했다. 콜먼과 테일러, 이 두 사람은 시대를 앞서 산 사람의 표본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의 혁명적 방법은 1950년대가 끝날 무렵에야 비로소 광범한 동의를 얻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재즈사를 통틀어 봤을 때, 1950년대는 실험 정신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뮤지션들

  1. 캐넌볼 애덜리 Cannonball Adderley: (미)(1928 —1975) 알토, 소프라노, 테너 색소폰, 트럼펫, 클라리넷, 플루트, 작곡.
  2. 카운트 베이시: 1930년대 참고.
  3. 아트 블레이키 Art Blakey: (미)(1919 -) 드럼.
  4. 러비 그래프 Ruby Braff: (미)(1927 -) 코넷, 트럼펫.
  5. 클리포드 브라운 Clifford Brown:(미)(1930-1956) 트럼펫, 피아노, 작곡.
  6. 데이브 브루벡 Dave Brubeck: (미)(1920-) 피아노, 작곡.
  7. 레이 찰스 Ray Charles: (미)(1932 -) 피아노, 보컬, 오르간, 알토색소폰, 작곡.
  8. 벅 클레이튼 Buck Clayto: (미)(1911-) 트럼펫, 작곡, 편곡.
  9. 온네트 콜먼 Ornette Coleman: (미)(1930-) 알토, 테너 색소폰, 트럼펫, 바이올린, 셰나이
  10. 존 콜트레인 John Coltrane: (미)(1926-1967) 테너, 소프라노 색소폰, 베이스 클라리넷, 플루트, 작곡.
  11. 케니 데이 번 Kenny Davem: (미)(1935-) 클라리넷, 소프라노 색소폰.
  12. 마일스 데이비스 Miles Davis: (미)(1926-1991) 트럼펫, 플뤼겔호른, 작곡.
  13. 에릭 돌피 Eric Dolphy: (미)(1928- 1964) 알토 색소폰, 베이스 클라리넷, 클라리넷, 플루트.
  14. 듀크 엘링턴: 1920년대 참고.
  15. 엘라 피츠제럴드 Ella Fitzgerald: (미)(1918 -) 보컬.
  16. 에롤 가너 Erroll Garner: (미)(1923- 1977) 피아노, 작곡.
  17. 스탠 게츠 Stan Getz: (미)(1927 -) 테너 색소폰.
  18. 자니 그리핀 Johnny Griffin: (미)(1928 -) 테너 색소폰, 작곡.
  19. 리 코니츠 Lee Konitz: (미)(1927 -) 알토• 소프라노 • 테너 색소폰.
  20. 험프리라이 텔턴 Humphrey Lyttelton: (영)(1921-) 트럼펫, 클라리넷, 피아노.
  21. 하워드 맥기 Howard McGhee: (미)(1918-) 트럼펫, 클라리넷, 피아노, 테너 • 알토 색소폰, 작곡.
  22. 재키 매클린 Jackie McLean: (미)(1932-) 알토 색소폰, 플루트, 작곡.
  23. 찰스 밍거스 Charles Mingus: (미)(1922 —1979) 베이스, 피아노, 첼로, 작곡.
  24. 모던 재즈 쿼텟 Modem Jazz Quartet(MJQ): (미)(1952-1974) 존 루이스(피아노), 밀크 잭슨(비브라폰), 퍼시 히스(베이스), 케니 클라크(드럼).
  25. 리 모건 Lee Morgan: (미)(1938- 1972) 트럼펫, 작곡.
  26. 게리 멀리건 Gerry Mulligan (미)(1927-) 바리톤 • 소프라노 색소폰, 클라리넷, 피아노, 작곡.
  27. 아트 페퍼 Art Pepper (미)(1925-1982) 알토 • 테너 • 소프라노 색소폰, 클라리넷, 플루트.
  28. 오스카 피터슨 Oscar Peterson: (캐나다)(1925-) 피아노, 오르간.
  29. 소니 롤린스 Sonny Rollins: (미)(1929-) 테너 • 소프라노 색소폰, 작곡.
  30. 조지 러셀 George Russell: (미)(1923-) 드럼, 피아노, 작곡.
  31. 로니 스콧 Ronnie Scott: (영)(1927-) 테너 • 소프라노 색소폰.
  32. 조지 시어링 George Shearing: (영)(1919-) 피아노 작곡.
  33. 호레이스 실버 Horace Silver: (미)(1928-) 피아노, 작곡.
  34. 주트 심스 Zoot Sims (미)(1925- 1985) 테너 • 알토 • 소프라노 색소폰, 클라리넷.
  35. 지미 스미스 Jimmy Smith: (미)(1925-) 전자 오르간.
  36. 랠프 서튼 Ralph Sutton: (미)(1922 —) 피아노.
  37. 클락 테리 Clark Terry: (미)(1920) 트럼펫, 플루겔호른, 보컬.
  38. 조 터너 Joe Turner: (미)(1911- 1985) 보컬, 작곡.
  39. 다이너 워싱턴 Dinah Washington: (미)(1924- 1963) 보컬(애칭 :여왕 The Queen).
  40. 머디 워터스 Muddy Waters: (미)(1915-) 기타.
  41. 지미 위더스푼 Jimmy Witherspoon: (미)(1923-) 보컬(애칭:스푼 Spoon).

1960년대

1960년대 재즈의 주류는 하드 밥이다. 그러나 하드 밥만이 전부는 아니다. 물론 하드 밥 재즈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찬찬히 돌이켜봤을 때, 1960년대 초에 일어난 움직임들 가운데 재즈적으로 가장 뜻깊었던 것은 프리 뮤직 운동 free form movement이다. 프리 뮤직은 태동기의 비밥과 흔히 비교된다.

무엇보다 기존의 것에 대한 거부라는 면에서 본다면, 그 둘은 흡사하다. 그러나 프리 뮤직이 태동기의 밥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배척받았다. 프리 뮤직은 급진적인, 실로 급진적인 재즈였기 때문이다.

프리 뮤직 전영은 지금까지의 음악과의 완전 결별을 소리 높이 외치고 나왔다. 그것은 그냥 새롭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프리 뮤직의 이상은 야성적인 wild 화성 체계에 있었다.

1960년대 미국 사회의 최대 이슈는 흑인 자존 의식의 광범위한 확산이었다. 흑인 재즈 아티스트들도 물론 거기에 적극 동참했다. 확산 일로에 있던 그 흑인 인권 운동 black power movement에 아치 셰프 등 재즈 뮤지션들도 하나둘씩 참여한 것이다.

서너 대의 관악기가 나란히 서서 하모니라고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 대위적 contrapuntal 관계를 유지하며 광란에 가까운 연주를 들려준다고 상상해 보라. 의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선율들을 마구 쏟아붓는 그 재즈는 분명 음악 그 이상의 어떤 이념적 무기였다. 또 당시 열렸던 모든 재즈 콘서트들 또한 하나의 커다란 공동 목표에 기꺼이 동참했다. 즉, 그 거친 질풍노도의 재즈에 정통성을 부여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196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어 시카고 악파 Chicago School가 결성됨에 따라, 그 재즈는 일반에게도 알려지기에 이르렀다. 이제 재즈는 사회적─인종적 주제 의식보다는 추상화된 표현 양식의 개발에 더 비중을 두게 된 것이다. 선 라와 무할 리처드 에이브럼스가 곧 동참, 새 시대 재즈의 선구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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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색적이고 풍성한 톤의 재즈 기타로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짐 홀. 온갖 기교를 최대한으로 절제하는 그의 기타는 지적인 재즈의 모범이다. 1960년대부터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가는 음악은 대중에게 외면당한다. 그 재즈는 그러한 문제를 더 심각하게 겪었다. 그들의 본토 미국에서 차갑게 외면당한 자유 형식 연주인들(free-form players)의 다수는 결국 망명하듯 유럽으로 이주했다. 거기서 정당한 평가를 받기 바랐던 것이다.

그들은 당초에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효과는 거두었다. 즉, 그 미국 전위 그룹의 음악적 경험은 당시 그들과 유사한 실험을 하고 있던 세계 각지의 음악인들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맨 처음, 재즈의 후발국인 유럽은 그 같은 새 음악을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유럽 자유 즉흥 악파(European Free Improvisation School)를 중심으로 하여 미국 친구들이 선도해 낸 어법을 부지런히 배우더니, 결국은 오래지 않아 자신들 고유의 언어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내기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큰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범세계 화합 오케스트라(The Globe Unity Orchestra)와 스판테이니어스 뮤직 앙상블(Spontaneous Music Ensemble, SME), 그리고 개인으로서는 기타의 데렉 베일리, 트롬본의 폴 러더퍼드이다. 이들 모두는 재즈를 추상의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그렇다면 본토 미국은 어떠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