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M 레이블과 유럽 재즈의 서정 — 70년대의 다양한 얼굴들

1970년대, 재즈는 대변혁을 맞이한다. 난해해진 프리 재즈와 정체된 유럽 재즈의 한계 속에서, 독일 ECM 레이블이 북유럽에서 새로운 재즈의 지평을 연다. '흑인의 열정이 배제된' 서정적이고 형식미를 갖춘 '유럽 재즈'를 탄생시키며, 전 세계에 명료하고 깔끔한 사운드의 새 기준을 제시하는 ECM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In a nutshell

    ECM 레이블과 유럽 재즈의 서정 — 70년대의 다양한 얼굴들

ECM 레이블과 유럽 재즈의 서정 — 70년대의 다양한 얼굴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프리 재즈와 결별하게 되었다. 그 즈음 프리 재즈는 드디어 자기 통제력을 하나 둘씩 잃어가, 결국에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지리멸렬의 난해한 음악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새 음악 어법을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

한편, 바다 건너 유럽의 재즈도 역시 록 음악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유럽의 재즈 뮤지션들은 마일스 데이비스 진영이 이미 구축해낸 수준의 재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곳의 관악 주자들도, 리듬 섹션 주자들도 모두 지리멸렬의 상태였다.

그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청신호가 날아 들어왔으니, 재즈와는 인연이 거의 없을 듯싶어 보였던 북국 스칸디나비아 지역이 그 진원지였다. 그 주인공은 1970년대 이래 유럽의 재즈를 장악해 온 독일의 ECM(Editions of Contemporary Music) 레이블이다.

그 레이블의 소속 아티스트들은 재즈의 어법을 빌려 북국의 저 혹독한 추위와 뇌쇄적 자연미를 성공적으로 형상화해 냈고, ECM은 그것을 세계에 알렸다. 기타리스트 테리 예 리프 달 Terje Rypdal, 베이시스트 아릴트 안데르센 Arild Andersen, 그리고 색소폰 주자 얀 가바르크 Jan Garbarek가 그 대표 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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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곧 들이닥칠 재즈의 대환란을 예고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1970년 앨범 잡것들 날뛰다의 표지. 다음 시대의 재즈, 즉 퓨전 재즈에서 기존 흑백의 음악이 각각 맞닥뜨리게 될 격변이 저렇듯 피 흘리는 백인과 땀 흘리는 흑인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 음악은 재즈도 록도 아닌 것이, 당시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렇게 출발한 재즈-록, 즉 퓨전은 1970년대를 휘어잡았다.

이들의 음악은 한마디로, 흑인의 열정이 배제된 재즈 music without the passion of black jazz이다. 보다 더 엄격한 형식미를 추구하는 동시에 높은 창조성도 함께 지향하는 재즈인 것이다. 그 재즈는 유럽 재즈 European jazz로 통칭되고 있다.

ECM의 사시(社是)는 명료하고 깔끔한 사운드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많다. 즉, 인간미가 결여되었다, 너무 메마른 재즈라는 것이다. 그러나 ECM의 소속 뮤지션들은 그 사시를 훌륭히 재즈로 승화시켰다. ECM과 관계하고 있는 그들 뮤지션들은 한결같이 모두 최상급이다. ECM은 얼마 뒤, 소속 아티스트의 범위를 넓혀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활동하는 국제주의자까지 포용하기에 이르렀다. 에버하르트 베버 Eberhard Weber, 에그베루토 지스몬티 Egberto Gismonti, 케니 휠러 Kenny Wheeler, 엔리코 라바Enrico Rava가 그 대표적 뮤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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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일스 데이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