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 영의 격

영은 시대를 통털어 최상급의 재즈맨이었다.

  • Lester Young
  • ·
  • Stylist
  • ·
  • Aug 21, 2026

In a nutshell

    레스터 영(2)
      Listen

레스터 영(2)

레스터영2.png

영은 베이시 악단에 1949년까지 머물렀는데 당시는 빅 밴드 작품에 버금가는 레퍼토리를 구사하던 빌리 할러데이와 일련의 레코딩 작업에 박차를 가하던 때였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어떤 체계도, 일관성도 없었는데 두 사람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Without Your Love, Funny That Way, Never Be The Same을 놓고 보면 누구에게 비중을 뒀는지 분간하기 힘들다. 명백한 사실은 두 사람의 곡조 만들기 방식이 교묘하게 어긋나면서도 들어맞았다는 점이다. 박자를 느릿하게 끌어가면서 둘만의 방식으로 절묘하게 가사나 선율을 밀고 당겨 갔던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영은 다양한 밴드 리더들과 작업했는데 그 인연으로 1944년에는 미 육군에 징집되기도 했다. 프레즈에게는 불행한 시기였으나 제대 후 즉각 연주로 복귀했다. 냇 킹 콜과의 웨스트 코스트 세션을 통해 건재함을 과시하더니 Back To The Land에서는 더욱 풍부한 감성을 표출하기까지 했다.

1946년 프로듀서 노먼 그랜츠의 일명 Traveling Circus로 불린 Jazz At The Philharmonic에 참여했다. 자기 그룹을 이끌면서 여타 올 스타 세션들과의 작업도 계속되었다. 그와 함께 이전에 없던 현상도 나타났던 바, 음악 동료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될 경우, 영의 연주가 덩달아 생기를 잃는 현상이 나타났다. 1950년부터 헌정 형식으로 출발한 Can’t Get Started는 대스타가 된 영이 자기 스타일의 패러디로 관심을 끈 경우다.

그 같은 방식이 결국 인기 재현을 노린 자구책이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오랜 동료들과의 작업을 통해 영은 당당히 일어섰다. 옛 동료 피아니스트 테디 윌슨과의 협연작 Taking A Chance On Love이 좋은 예다. 그러나 40대에 쇠약해진 그는 1955년 이후 3년 동안 세 번 입원해야 했다.

세상을 뜨기 수년 전, 영은 독주자로서만 활동했는데 건강이 좋을 때는 전성기를 넘보는 연주를 구사했다. 건강할 때라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영은 시대를 통틀어 최상급의 재즈맨이었다.

Listen

Subscribe

Jazzaje의 정원에서 최신 글과 업데이트를 받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