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바이어스

동시대 악사들처럼 카를로스 웨슬리 바이어스의 음악적 토대 또한 빅 밴드의 수준과 유사했다. 1935년 당시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리이어넬 햄프턴 밴드에서 악사로 출발한 그는 이름을 얻어가자 돈 레드먼, 럭키 밀러와 어깨를 겨누더니 앤디 커크와 1년여 시간을 쌓았다. 곧 이어 1941년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레스터 영을 교체하는 남 부럽잖은 경력마저 쌓았다.
’Royal Garden Blues’나 ‘Sugar Blues’ 같은 곡을 들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차세대 최고의 테너 색소폰 주자”라는 소개대로였다. 콜먼 호킨스파의 연주와 조금씩 어긋나는 듯한 그의 풍성한 톤은 유려한 즉흥 연주에 제격인 낭만성을 구현했다.
클럽 민튼즈 하우스에서 비바퍼들과 친교를 나누던 40년대라면 각광 받을 일이었다. 바이어스의 음악적 특성은 그들과 감성적으로 즉각적으로 소통했으며 그 같은 특성 덕에 원조 비바퍼 디지 길레스피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을 정도였다. 1946년 느긋한 라이프 스타일을 꿈꾸며 돈 레드먼과 함께 유럽으로 건너 온 그는 가기서 여생을 마감했다. 미국은 가끔 여행 삼아 들렀을 뿐 녹음 작업은 네덜란드에서 하는 식이었다. 만년에 들어 자신의 유명한 솔로 연주를 요약하는 작업에 뜻을 둔 바이어스는 30년대의 기교파 연주를 재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 연주의 답습을 벗어나 세월의 흐름을 의식하고 있었다. 비밥의 역사를 재현한 ‘Anthropology’와 함께 콜트레인의 음악적 추이를 전망한 기록물은 그의 음악적 과거를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