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재즈의 서막 — 경계 없는 음악의 탄생

포스트모던 시대, 불변의 진실 없이 조각난 진실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재즈는 어떻게 의미를 찾아가는가. 1980년대 이후, 신고전주의, 프리 펑크, 월드 뮤직, 노 웨이브 등 수백 가지 스타일이 뒤섞여 경계 없는 혼돈의 미학을 펼쳐내는 포스트모던 재즈의 탄생과 그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조명한다.

In a nutshell

    포스트모던 재즈의 서막 — 경계 없는 음악의 탄생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결론

포스트모던 재즈의 서막 — 경계 없는 음악의 탄생

포스트모던 재즈가 생겨나서 발전하는 데에는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촉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앞 시대의 여러 스타일들이 산만하게 남긴 요소들의 본질을 통찰한 다음 그 핵심을 묶어내는 우리 시대 재즈 특유의 절충주의 eclecticism,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다채로운 양상들로부터 _그 어떤 유의미한 무엇_이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파편화 • 해체화의 길을 걷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_의미와 관계_를 회복해 보려는 필사적인 시도이다.

디지털과 컴퓨터 통신 등등의 테크놀로지 덕분에 정보의 홍수 속에 파묻혀 살게 된 오늘날, 음악가란 무엇인가?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달팽이 껍데기처럼 좁아든 공간에서 개인적인 실재를 구축해 보려 애쓰는 존재, 그 이상은 될 수 없다.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불변의 진실이란 없다. 조각 난 진실, 부분적 진실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하여 총체성을 회복한 음악, 땅속에 굳건히 뿌리내린 음악에의 갈구가 재즈 전통의 재탐색과 더불어 시대적 요청으로서 타오르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 지금까지의 양식적 편린들을 조합하여 새 재즈의 어법을 탐색해 내는 과정이 바로 그러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75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포스트모던 재즈, 어떻게 나뉘나 1980년대 재즈의 주된 경향은 _전반적 보수화_이다.

오늘날 스타일은 수백 가지이다. 베이시스트 빌 라스웰의 경우 이러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스타일, 저 스타일 많이 생겨나기도 했다.

각 음악 양식들 사이의 경계는 유동적이다. 더욱이 그러한 양식과 양식이 만나 산출하는 _2차적 파생 양식_은 제대로 다 꼽을 수 없을 만치 무수하다.

1980년대 들어 생성한 재즈 스타일들 가운데 중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는 프리 재즈의 음악 어법을 동원, 재즈가 긴 세월 동안 일구어낸 위대한 음악 유산들을 현재에 되살려 내고 있다. 프리 재즈의 음악 요소가 전통 재즈의 연주 방식과 혼합되고 엉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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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분오열되어 있던 20세기 말의 재즈를 _고전주의_의 기치 아래 드디어 통합시켜 낸 윈턴 마설 리스. 그의 저 자신만만한 표정에는 재즈의 정통 계승을 두고 1980~1990년대 재즈계에 벌어졌던 유례없는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승리한 자의 느긋함이 배어 있다. 이후 재즈사는 마설 리스를 중심으로 하여 서술될 것이다.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 태생이다.

  1.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 고전주의 또한 발달한다. 프리재즈적 요소는 배제하고, 1970년대 비밥 부흥 운동 이후의 재즈만을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비밥을 재즈의 정통으로 보기 때문이다. 고전주의와 더불어 스타일리스트적 기량이 다시 중시된다는 점은 대단히 주목된다.

  2. 프리 펑크(free punk) 음악이 재즈-록 음악을 모델로 하여 출현한다. 이 재즈는 뉴 웨이브, 심지어는 펑크 음악의 리듬과 음을 재료로 하여, 관악기의 자유 즉흥 연주(free horn improvisation)를 지향한다.

  3. 월드 뮤직은 계속 발전해 나간다. 아시아, 아프리카, 인도, 중동 등 세계 각지의 음악 문화유산을 인용하는 재즈 뮤지션들이 점점 늘어갔기 때문이다.

  4. 한편에서는 프리 재즈, 또 그에 맞서서 록과 펑크가 일어나, 노 웨이브(no wave) 음악이 탄생한다. 이 음악은 펑크(punk), 헤비메탈(heavy metal), 트래시 록(trash rock), 극소주의 음악, 종족 음악(ethnic music), 이 밖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음악의 영향을 입어 생겨났다. 노 웨이브는 ‘노이즈 뮤직(noise music)’, ‘아트 록(art 록)’이라고도 한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결론

그런데 실제 현실로 돌아와 보았을 때는 결코 단순한 양상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재즈가 갈피조차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나타나는 것은 위의 경향들이 서로 뒤섞여 발전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거기에다 제3의 변종까지 친다면 그 양상은 만화경적이다.

고전주의, 신고전주의, 프리 펑크, 월드 뮤직, 노 웨이브는 서로 아무런 연관 없이 독립적으로 발전해 나가지는 않는다. 때로는 그 경향들이 서로 뒤섞여서, 갈피를 종잡기 힘들 만큼 다채로운 음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그 양상이 ‘다채롭다’는 정도가 아니라, ‘혼란’의 경지로 비치기도 한다. 1980년대 이후, 어느 뮤지션의 연주 방식을 한 개의 범주에만 묶어서 분류하여 두는 일은 이제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더욱이 뮤지션들이 자신이 새 음악을 탐색할 때마다 그 과정을 언론 등에 공개하기 때문에 상황이 더욱 혼란스러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