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그 이름의 미스터리 — 유쾌한 수다에서 야릇한 속삭임까지

재즈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유쾌한 수다를 뜻하는 불어 '자세'부터 정액을 의미하는 속어 '지즘'까지, 재즈 어원에 얽힌 기묘한 가설들을 파헤친다. 한때 성적인 방종을 뜻하며 금지령까지 내려졌던 재즈가 어떻게 오늘날 전 세계가 사랑하는 음악 장르가 되었는지, 그 파란만장한 이름의 역사를 따라가 본다.

  • Original Dixieland Jazz 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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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y 27, 2025

In a nutshell

    ‘재즈’ 그 이름의 미스터리 — 유쾌한 수다에서 야릇한 속삭임까지

‘재즈’ 그 이름의 미스터리 — 유쾌한 수다에서 야릇한 속삭임까지

재즈라는 말의 기원

재즈 jazz라는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이 문제를 두고 많은 학자들이 씨름했으나, 속 시원하게 풀리지는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정확한 어원이 쉽게 떠오르지 않아, 나중에는 아프리카나 아랍 쪽의 언어까지 샅샅이 뒤지는 노고를 치른 학자도 있다. 이보다 약간 더 신빙성 있는 연구로서, 불어의자세 jaser라는 동사로부터 연원했다는 설도 있다. 그 뜻은수다 떨다이다.

혹은 초창기 뮤지션 가운데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었던찰스 Charles 또는제임스 James로부터, 그 말이 탄생했다고도 한다. 즉,찰스체스 Chas로,제임스제스 Jas로 축약되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특정 인물을 지목한 설(說)도 있다. 시카고의 한 인기 뮤지션이었던 재서보 브라운 Jasbo Brown의 이름이 그 기원이라는 것이다.

정액semen을 뜻하는 속어인지즘 gism, 또는재즘 jasm에서 유래했다는 학자도 있다.재징 jazzing이라는 말이간통을 뜻한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 말이 음악적 의미로 쓰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20세기 초의 뉴올리언스와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는 그재즈라는 단어가성적(性的)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는 초창기 재즈 음악가들의 회고도 주목된다.

또 재즈라는 말이 향수(香水)를 뜻하는 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설도 만만찮다. 20세기 초 루이지애나 지역의 한 곡마단에서 일한 어떤 이의 회고를 들어보자.

뉴올리언스에 향수 산업을 최초로 들여온 사람들은 프랑스인이라지, 아마. 그런데 그 지방에서 가장 인기 있던 향료가 재스민 향이었지. 그 향료를 향수 원액에다 혼합하는 일을 가리켜 다들제스 잇 업 jass it up이라 했거든.

그 향은 대단히 자극적이었는데, 특히 홍등가에서는 최고로 쳐주는 물건이었어. 그 동네를 기웃거리는 남자가 있으면, 아가씨가 다가가서 이렇게 속삭였지.「젊은 양반, 오늘 밤 한재서어때요? Is jass on your mind tonight, young fellow?

원래거시기를 뜻하던 이 말이, 언젠가부터는 음악에까지 슬슬 적용되더구먼.

1916년, 뉴올리언스에서 온 자니 스타인 밴드가 대도시 시카고에서는 낯선 유형의 음악을 연주했다. 멀지 않아, 그 음악이재즈로 불리게 된 것이다. 다음은 당시의 증언이다.

재스라는 말이 음악을 가리키는 데에 쓰이기로는, 카페 실러에서가 처음이었다. 위스키와 우리 악단의 흥겨운 음악에 불콰하게 기분이 좋아진 퇴역 연예인이 급기야는 자기 테이블 위로 올라가더니만, 이렇게 소리쳤다.

「야, 죽여준다! Jass it up, boys!

그때 쓰인재스라는 말은 원래 시카고 뒷골목에서 나왔다. 음탕한 뜻을 가진 속어였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쌍소리 four-letter words가 보통 그러하듯, 그 말은 아무렇게나 남발되었다. 그런 식으로 마구 무분별하게 쓰이다 보니, 원래의 뜻은 점차 희미해져 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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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 암스트롱.

재즈가 낳은 최대의 인물로 그를 칭송하는 데 아무도 반기를 들지 않는다. 첫 레코딩을 한 1923년부터 세상을 뜬 1971년까지, 최고의 재즈멘이었다. 그가 세상을 뜨자 전 세계에서 뜨거운 애도가 빗발쳤다.

그 카페의 주인인 해리 제임스가 그 일을 그냥 스쳐 지나갈 리 만무했다. 얼큰하게 취한 손님들이 아무렇게나 던진야, 죽여준다!라는 이 말 한마디가 시카고 화류계의 노장 제임스에게낚인것이다.

결국 제임스는 어릿광대를 한 명 고용해서는 그런 식으로 홍을 돋우는 일만을 시키기에 이르렀다. 그자가 맡은이라고는 얼큰하게 취해 있다가는 아무 때고 마음 내킬 때마다Jass it up! 하고 외치는 것이 다였다. 그러면, 손님들 모두가 신이 나서 술을 들이켜댔는데 그런 가관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카페 문 앞에는 불타는 듯 붉은 글씨로 이런 간판 하나가 나붙기 시작했다.

스타인의 딕시 재즈 밴드 STEIN’S DIXIE JASS BAND

거기서 나온재스는 곧 시카고 전역으로 급속하게 전파되어 갔다.

그때까지 이름 없이 떠돌던 음악이 이처럼 우연찮게 멋진 이름 하나를 갖게 된 것이다.

약간의 멤버 교체를 거친 그 밴드가 뉴욕에 와서 라이젠베버 레스토랑 Reisenweber’s Restaurant이라는 데에다 예약을 해둔 일이 있다.

맨 처음에는제스 jass라고 했던 말이제스 jasz를 거쳐 현재의 모습인재즈 jazz에 이르기까지, 최대의공신은 래그타임 연주자들이었다. 그 말은 마침내 신문 지면에 오름으로써, 공식화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1917년 2월 2일 자 뉴욕 타임스를 통해서였다. 그 신문 오락면에서재즈 jazz라는 최종적 형태의 말이 마침내 선보인 것이다.

유명한 오리지널 딕실랜드 재즈 밴드가 처음으로 동부에 모습을 드러내다. The First Eastern Appearance of the Famous Original Dixieland Jazz Band.

원래제스 jass였던 단어가재즈 jazz로 바뀌기까지의 곡절에 대해서, 단원 닉 라 로카의 설명은 이렇다.

「아이들과 몇몇 짓궂은 어른들이 그 포스터에 찍혀 있던재스라는 단어에서 j자를 지우고ass라는 쌍소리로 만들어 버리려 안달이어서, 임시방편으로 생각해 낸 것이(jazz)였다」

오리지널 딕실랜드 재즈 밴드는 1910년대 전후를 무대로 활약한 5인조 백인 악단이다. 그중, 바로 위의 예화에서 등장하는 닉 라로카는 그 악단의 코넷 주자였다. 라로카의 설명은 우리 한국 사람에게는 언뜻 감이 잘 안 잡힐 수도 있다. 그 속 사정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jass에서 j를 지운 ass라는 말에는 좋은 뜻이란 없다. 보통의 뜻은당나귀또는(고집 불통의) 바보인데, 속어로 쓰일 때는 참의로 지독한 뜻으로 바뀌는 것이다.궁둥이,항문,여자 성기,(성교 대상으로서의) 여자등이 비속어로서의 그ass의 뜻이다.

이쯤 되고 보니, 아무 죄 없는 유랑 예인 집단에 대해 당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얼마나 짓궂었는지 잘 알 수 있다. 밴드 측의 그 같은 대처가 괜한호들갑은 아니었던 것이다.

과연 누가 ‘재즈’라는 말을 맨 처음으로 사용했는가라는 문제는 엄밀하게 말한다면 영원한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것은리듬감 넘치는 즉흥 음악을 두루뭉술하게 일컫는 말로 쓰였다.

그 재즈 음악이 첫선을 보였을 때, 일부도덕 군자들은 그 음악에 대하여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그리하여, 초창기의 재즈는 그처럼 어처구니없는 항의와 부당한 반대를 견뎌내야 했다. 일례로, 1921년 1월 일리노이 주는 공식적으로 재즈 금지령까지 선포하기도 했다. 재즈란 음악은 술• 담배처럼, 인간에게 백해무익할 뿐이라는 것이었다.재즈라는 말 자체부터가 성적(性的)인 방종을 뜻하는 터에, 그 난잡한 음악은 결국 젊은이들을 오도할 뿐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호기심만을 자극할 뿐인 음악재즈가 결국에는 오늘날처럼 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음악 장르가 된 데에는, 초창기의 그 같은호들갑덕택도 없지 않다.

재즈라는 말이 어떻게 하여 탄생되었건 간에, 그 이름이 숱한 도전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재즈의 거장 듀크 엘링턴마저도 그 이름을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다.더 고상한 이름이 붙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사실,재즈라는 말은 여러분들 딸아이들이 사귀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불량스러운 놈팡이들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아도 그리 틀리지 않는다. 이렇게 된 데에는재즈라는 말 자체의 어원이 한몫 단단히 하고 있지. 그 말을 들으면, 뉴올리언스의 창녀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거든.

급기야 1920년대 이후, 나는 플레처 헨더슨(1920-1950 년대에 활약한 흑인 밴드 리더)에게 기회가 닿는 대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음악재즈는 이름이 너무 천박하다고. 그러니, 우리 스스로부터가 그 이름을 바꿔 불러야 한다고.

즉,흑인 음악 Negro Music으로!

그러나 이제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어. 이재즈라는 음악은 온갖 음악 요소들을 흡수 통합하다 보니, 이제 본래의색깔을 논하기 힘들 정도의 범벅이 되고 말았거든.

재즈라는 말에서 은근히 강하게 풍기는 고약한 뒷맛, 즉 성적인 암시 sexual connotation를 없애 버린 새 이름을 붙이자는 희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1930, 1940년대에는 그 같은 염원이 뜨겁게 타올랐다. 당시 음악 전문지들이 앞장서서, 어설픈 조어들을 마구 남발했다. 예를 들면,래그토니아 ragtonia,신코팹 syncopap,크루컷 crewcut,아메리뮤직 Amerimusic,자브 Jarb등 알 듯 말 듯 아리송한 이름투성이였다.

이러한 호들갑을 거쳐,재즈라는 말에서 집요하게 풍겨오던 그 성적인 색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한참 뒤인 1990년대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현재는 의미를 일신, 갖가지 음악 형식들 또는 브로드웨이 무대를 주름잡고 있는 각종 춤을 뭉뚱그려 지칭한다. 예를 들어 화장품 이름, 컴퓨터 소프트웨어 이름에서부터 TV 연속극 제목과 동네의 옷 가게 이름 같은 데까지,재즈라는 말은 이제 거의 무제한적으로 응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