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의 여왕 베시 스미스, KKK에 맞서다

흑인들에게는 대스타, 백인들에게는 무명 가수였던 블루스의 여왕 베시 스미스. 그녀의 공연에 KKK 단원들이 몰려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1927년, 텐트를 부수려던 KKK 단원들에게 베시 스미스는 직접 나서 호통을 치고 그들을 쫓아낸다. 인종차별에 굴하지 않은 그녀의 담대하고 강인한 저항 정신을 엿본다.

In a nutshell

    블루스의 여왕 베시 스미스, KKK에 맞서다

블루스의 여왕 베시 스미스, KKK에 맞서다

*〈블루스의 여왕 Empress of the Blues〉*베시 스미스의 경우도 그것보다 덜하지는 않다. 활동 당시 그녀는 흑인들에게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쟁쟁한 대스타였지만, 흑인들의 세계를 벗어나면 무명 가수나 다름없었다. 백인들은 그녀를 음반을 통해서만 간간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베시의 유명한 순회 쇼를 보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그녀의 성공을 은근히 시샘하던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에게 베시는 어떻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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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리 홀리데이의 삶에는 흑인 여성에게 주어진 영광과 파멸의 모습이 각각 최대치로 실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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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에서 세상을 뜨기 바로 1년 전인 1958년까지 빌리 홀리데이의 실황 걸작 모음집 표지.

저 그림으로부터 우리는 몇 가지 귀한 정보를 캐낼 수 있다. 내팽개쳐진 전화기와 술병, 그리고 비탄에 빠져 있는 저 몸짓은 상당히 *〈도회적 고뇌〉*의 모습이다. 목화밭 흑인 노예들의 삶에서 자연스레 생성된 원시 재즈는 가혹한 노동과 함께 원시적 건강미 또한 깃들어 있었다. 그랬던 재즈가 저 같은 감정을 생생하게 뎌해 내는 도구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둘째, 그 고뇌는 바로 할러데이 자신의 가혹했던 *〈무대 뒤의 삶〉*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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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셋째, 레코드 표지에까지 저렇듯 똑똑하게 남겨져 있는 *〈오독〉*의 흔적이 그것이다. 즉 Billie라는 원래의 스펠링이 Billy로 잘못 표기 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그리 낯선 실수가 아니었다.

든 자빠뜨려야 하는 경쟁 상대였을 뿐이었던 것이다.

베시가 남부 지방에 순회 공연을 나가면 으레 커다란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들은 그녀의 노래에 환호하거나, 농담에 배꼽 잡기도 했다. 그런데 실은 그 대부분이 그 악명 높은 K.K.K. 단원이었다는 사실은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녀가 그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들은 베스가 공연 오면, 자신들의 섬뜩한 유니폼인 흰 망토와 두건 따위는 장롱 깊숙이 처박아 두고 우르르 몰려와서 웃고 박수 쳐댄 것이다. 그 시간, 흑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언제 끝날지 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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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K.K.를 호통쳐 내쫓은 여걸, 〈블루스의 여왕〉 베시 스미스.

중노동에 허덕여야 했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녀는 어쨌거나, 그런 기가 찬 현실을 모른 척하고 그냥 넘겼다. 그것은 그녀가 무심하다거나 비겁해서가 아니었다. 그런 식의 체념적 태도는 당시 남부의 흑인들이라면 대부분 생활에서 이미 체득하고 있던 바였다. 이 점은 그들의 심성(mentality)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그녀 역시 그러했다. 즉, 그녀의 마음속은 평소 자기네 흑인들을 짐승 취급하는 백인들에 대한 적의로 부글부글 들끓고 있었지만, 아무 내색 않고 그냥 공연을 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원했건 원치 않았건 충돌은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27년 7월 노스캐롤라이나 주 콩코드 시에서의 일이다. 그동안 꾹꾹 삭여오고만 있었던 K.K.K.에 대한 적의가 드디어 폭발하고 만 것이다. 푹푹 찌는 날씨에다 사방이 꽉 막힌 텐트 안이었으니, 그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발전기마저 돌고 있었다. 앉아서 구경만 하는 관객들은 물론이거니와 공연자들은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공연이 겨우 반쯤 넘었을까, 악사들 중 한 사람은 그 열기를 참다 참다 거의 기절할 것만 같았다. 마침내 그 사람은 조용히 자리를 박차고는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밖으로 나간 그가 그 커다란 텐트 주위를 돌며 신선한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때, 웬 소리가 들렸다. 뭔가 조심조심 움직이는 소리와 투덜대는 듯한 목소리가 그것이었다.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두건으로 머리를 감싼 사람들 대여섯 명쯤이 서성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걸친 흰옷이 달빛에 선명하게 비쳤다. 그들이 하려는 짓은 뻔했다. 바로, 베시의 텐트를 무너뜨리려는 것이었다. 텐트의 말뚝 대여섯 개는 이미 뽑아둔 뒤였다.

그는 그 K.K.K.의 눈에 띄지 않고, 텐트 뒷문으로 살짝 급히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때, 베시는 다시 나와 달라는 관중의 열렬한 환호를 뒤로하고 무대 밖으로 막 나오는 길이었다. 나와 보니 당연히 그 악사가 있었다. 괄괄한 성질의 베시는 왜 혼자 몰래 빠져나와서 빈둥대느냐고 막 한바탕 호통 치려 했다. 그 순간, 그는 방금 본 것을 황급히 이야기해 주었다.

「개자식들! Some shit!」

그녀가 내뱉었다. 그러고는 잡일하는 아이들을 불러, 함께 텐트 주위를 둘러보았다. 곧, K.K.K. 몇이 눈에 띄었다. 그들과의 거리가 불과 몇 발짝 정도로 좁혀지자, 소년들은 그만 겁에 질려 멀찌감치 뒷걸음치고 말았다. 지금 왜 이 소란을 떨고 있는지 베스가 소년들에게 이야기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공포의 흰옷과 공포의 흰 두건을 본 순간, 그들은 본능적으로 겁에 질려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만 것이다.

그러나 베시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그 불청객들 쪽으로 달려가더니, 10피트 전방에 당당히 버티고 섰다. 그러고는 한 손은 엉덩이에 걸치고, 다른 손은 주먹을 치켜든 채 호통쳤다.

「이 망할 자식들, 지금 무슨 개수작이야? What the fuck you think you’re doing?」

그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바로 옆의 풍악 소리를 뚫고 또렷이 들렸다.

「정 원한다면 내가 이 텐트를 딴 데로 옮겨놓지. 빨리 천막을 걷어내고 꺼져!」

그녀가 계속 외쳤다.

그러자, 그 시퍼런 서슬에 너무 놀라 입만 쩍 벌리고 서 있던 것은 K.K.K. 단원들이었다. 베시는 조금도 화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화들짝 도망치는 그들의 뒤꽁무니에 대고 쌍욕이란 쌍욕은 다 퍼부었다.

한참 뒤, 주위는 완전히 깜깜해졌다. 그제야 그녀의 그 서슬 퍼런 분이 겨우 누그러뜨려졌다.

「그따위 개똥 같은 새끼들이 있으리라고는 꿈도 못 꿨다 I ain’t never heard of such shitj」

베시는 이렇게 말하고 나더니, 이번에는 아이들한테로 갔다.

「너희들도 나을 것 하나 없어. 이 계집보다 못한 자식들」

그 아이들은 아까 겁에 질려,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한바탕 북새통을 치르고 난 〈블루스의 여왕〉(베시 스미스의 애칭)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곧 자기 텐트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