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전용’ 호텔과 베니 굿맨 악단의 갈등

1930년대, '백인 전용'이 당연했던 시대에 흑인 악사들과 함께 무대에 선 베니 굿맨 악단. 남부 투어 중 '백인 전용' 호텔 매니저의 노골적인 인종차별에 맞선 굿맨의 단호한 태도와, 한편으로는 클라리넷 외에는 무관심했던 그의 복합적인 면모를 통해 재즈 시대 인종차별의 민낯과 그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In a nutshell

    ‘백인 전용’ 호텔과 베니 굿맨 악단의 갈등

‘백인 전용’ 호텔과 베니 굿맨 악단의 갈등

(덤덤하게 본다면, 이 소동은 갑자기 뒤가 마려워진 한 흑인 재즈맨의 경솔한 행동 탓 아니냐고 생각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처럼 쉽게 판단하기에 앞서, 그동안 백인들로부터 부당하게 억눌려 살아온 데서 응어리져온 깊숙한 반발심에서 그 흑인 악사의 행위가 비롯된 것이 아닌지를 먼저 찬찬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관용은 물론, 때로는 눈꼽만치의 상식조차 자신들에게 용납되지 않는 그런 사회에서 흑인들이 그 힘겨운 세월 동안 허덕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면, 위의 예화는 오독의 소지마저 있는 것이다.

대화 부분을 굳이 원어로 밝혀준 데에는, 따라서 그만한 이유가 있다. 흑인에 대한 폭력은 그처럼 일상 언어의 수준에서부터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두고자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 두드러진 예로, 당시 백인들이 흑인을 흔히 지칭하던 말 nigger가 그렇다. 이것을 우리말로 옮긴다면 가치 중립적인 — 또는 점잖은 — 단어인 흑인이 아니라, 경멸의 뜻이 가득 담긴 검둥이 혹은 깜둥이 새끼라 해야 제대로 된 번역이다. 바로 이런 것이 백인들의 생활 언어였던 것이다.)

흑백이 한 무대에 선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시대에, 백인으로서 흑인 악단인 립스 페이지 밴드(Lips Page’s Band)에 몸담고 있었던 드러머 스탠 쇼(Stan Shaw)의 회고담이다.

베니 굿맨(Benny Goodman)은 1930년대 후반, 흑인 피아니스트 테디 윌슨(Teddy Wilson)을 기용하여 빛나는 하모니를 이루어냈다. 윌슨은 그리하여, 흑인의 신분으로서 1급 백인 악단의 기둥 멤버로 활약한 쾌거의 주인공으로 보통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흑백의 차별이 공식적으로 엄존하던 그때, 그 일은 과연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굿맨 악단의 수석 트럼펫 주자로 수년 동안 일했던 지미 맥스웰 Jimmy Maxwell 은 그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굿맨은 돈 문제라면 대단히 짠 사람이었다. 때로는 돈에 목숨 건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테디 윌슨이다. 그는 윌슨을 위해서라면 미국의 절반이라도 뚝 떼어내 줄 것 같아 보일 때도 있었다.

남부 지역 순회 연주 때였다. 당시 우리 밴드에는 흑인 멤버가 대여섯 있었다. 그들은 시드 캐틀렛, 존 시몬스 John Simmons, 찰리 크리스천 Charlie Christian, 쿠티 윌리엄스 Cootie Williams 등 모두 쟁쟁한 실력자들이었다.

그런데 우리 악단이 흑백 혼성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매니저가 이렇게 시비 걸고 나왔다.

「이 흑인 악사들 말이야, 로비나 식당 같은 데에는 들락거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솔직히 말해서, 여기서는 그 사람들 꼴도 보기 싫거든」

그 말을 굿맨이 들었다. 굿맨의 심기가 몹시 거북해졌다. 굿맨의 대꾸가 이어졌다.

「그렇게 언짢을 줄은 몰랐군요. 그런데, 그게 바로 내 악단입니다. 그 사람들이 내 밴드에 있는 것을 두고 그렇게 트집 잡겠다는데 ……. 정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나가주리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그자가 곧 받았다.

「나가려면, 사람들 눈에 안 띄도록 부엌으로 나가야 되는데 ……」

베니가 말했다.

「단원들은 부엌으로는 출입하지 않습니다」

그자의 말이 곧 이어졌다.

「악사들 모두 다 부엌으로 나가야 돼요」

베니가 말했다.

「단원들 중 부엌으로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이제 단원들이 여기 오려면, 유니폼 차림으로는 안 돼요」

「좋소. 이제는 입지 않을 거요」

그 기세등등한 매니저 앞에서 말은 그렇게 했으나, 굿맨은 흑인 단원들과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흑인이건 백인이건 간에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는 해를 입히지 않았다. 만에 하나 그가 그랬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의 뜻이었지, 그런 류의 이유는 아니었다. 하물며, 인종적 이유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한편, 굿맨과 함께 활동한 트러미 영의 견해는 다르다.

베니 굿맨과 테디, 슬램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호텔을 찾아 헤매고 있을 때였다. 우리 일행을 보더니만, 가는 곳마다 묵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테디가 베니에게 말했다.

「보다시피 우리는 호텔방을 얻을 수 없다잖아요. 당신이 예약은 해두었든 줄 알았는데 ……」

(베니가 이런 일로 나설 사람은 아니지.)

「다들 알겠지만, 내게도 문제가 있어. 이곳에서도, 또 저곳에서도 나를 받아주지 않아. 왜냐하면, 나는 유태인이니까」

우리는 *「그렇다면 뉴욕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잘해 줘서 매우 고맙지만, 가야겠다고.

(사람 좋은 베니를 그렇게까지 몰아세울 필요가 있었나?)

베니는 다른 누군가를 불러 해결을 부탁했다. 네가 그르니 내가 옳으니 하며 시비를 다투는 일은 그에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나는 베니를 좋아한다. 그러나 베니가 다른 사람의 일에 두 팔 걷고 뛰어들 사람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또 그 어느 누구에게도. 그의 머릿속은 온통 클라리넷 생각뿐이었다. 클라리넷만 아니라면, 그게 자신에게 설령 어떤 해코지를 해댄다 해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정말, 오직 클라리넷만이 전부였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