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감상의 첫걸음 — 스탠더드 넘버, 그 변주를 따라서

재즈는 지식이 아닌 체험이다. 백과사전식 잡학은 잠시 접어두고, 잘 알려진 스탠더드 넘버의 끝없는 재해석을 따라가 보라. 팝 리바이벌과는 차원이 다른 재즈만의 '변증법'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생명력을 만날 수 있다.

In a nutshell

    재즈 감상의 첫걸음: 스탠더드 넘버, 그 변주를 따라서
      재즈의 맛은 여기에 — 스탠더드 재즈론

재즈 감상의 첫걸음: 스탠더드 넘버, 그 변주를 따라서

재즈의 맛은 여기에 — 스탠더드 재즈론

자 이제 우리는 재즈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를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앞에서 예고한 대로 재즈를 제대로 듣는 법, 그리하여 결국에는 재즈와 친교 트는 법에 대해 생각해 보자. 대표적 재즈 아티스트들의 삶이 어떠했고 대표작은 이러이러한 곡이라는 식의 이해 또한 재즈를 아는 데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식의 백과사전적 지식은 음악의 본질과는 겉도는 잡학(雜學)으로 그치기 십상이다.

재즈는 무엇보다 음악 그 자체로서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재즈는 설명해야 할 그 무엇이기에 앞서, 느껴야 할, 또는 체험해야 할 그 무엇인 것이다. 재즈는 지식의 축적물이기에 앞서, 음악 현상을 통하여 자유를 구축해 나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재즈 고유의 법칙같은 것이 있다.

「재즈라는 음악이 어떤 것인지를 빠르게 또 바르게 알고 즐길 수 있게 하는 법은 없을까요?」

이는 심심찮게 접하게 되는 소박한, 그러나 질문하는 쪽에서 봤을 때는 절실한 문제이다. 그에 대한 답을 쓴다는 심정으로 정리한 글이 바로 이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 맛을 제대로 느끼면서, 동시에 효율적으로 재즈에 접근할 수 있나 하는 것이다.

과연 있을까?

재즈에는 여타 예술 장르와는 달리, *온고이지신(溫故以知新)*이 굳건한 전통으로서 유구하게 이어온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사랑받은 특정 곡들을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해 내는 전통이 바로 그것이다. 바로 앞에 등장했던 작품 테이크 파이브는 연주곡이었다.

그러나 일반 대중에게 강한 설득력을 지니는 장르라면 역시 보컬곡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 안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보컬곡 가운데서도 세월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곡이 있다면, 그러한 곡은 당연히 하나의 훌륭한 기준이 된다.

우리가 그 사실을 중시하는 것은 바로 그 스탠더드 넘버들이 재즈에서는 특별히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곡들은 보컬을 포함한 각종 악기로 꾸준히 재해석되고 있다. 하나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곡을 만인 앞에서 새롭게 해석해 낸다는 일은, 자기 예술에 대한 신념이 확실할 때라야만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 그러한 시금석역할을 단골로 하는 스탠더드 보컬 곡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육체와 영혼 Body and Soul, 미스티 Misty, 무지개 저 너머 Over the Rainbowj, 당신의 눈에 가득한 안개 Smoke Gets in YourEyes, 러버 맨 Lover Man, 당신의 모든 것 All of You, 당신의 모든 것 All the Things You Are, 낙엽 Autumn Leaves(원제 : Les Feuilles Mortes), 당신이 집으로 와줄 수만 있다면 너무 좋을 텐데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 등이 우선 먼저 꼽힌다. 이 모두가 재즈 팬이라면 당연히 다 알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곡들이다. 또 비록 재즈 마니아는 아니라 하더라도, 음악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들었을 곡들이다.

여기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즉, *잘 알려진 곡을 뒤에 리바이벌해 내는 것은 팝 음악 쪽에도 흔히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냐? 그럼 도대체 뭐가 다른가?*라는.

그러나 그 둘은 기본 시각에서부터 서로 분명히 다르다. 압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때문이다. 즉, 팝 음악에서는 리바이벌이지만 재즈에서는 재해석인 것이다. 이 차이는 실로 결정적이라 할 만치 중요하다.

팝에서의 리바이벌 작품이란 이미 널리 인기를 끌었다는 기존 질서(더 정확히는 안전판)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제2대 교배 품종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면, 재즈에서의 그것은 일반의 귀에 익은 그 테마 위에서도 자신의 개성을 충분히 펼쳐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용이하게 입증해 낼 수 있는 매개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똑같은 곡에서 주제를 취하여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재즈에서는 연주자의 개성에 따라서 엄청난 편차를 보이는 것이다. 아주 극단적인 경우, 같은 것이 있다면 제목뿐일 경우도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재즈적 자유란 바로 이런 것이다.

동일한 곡을 갖고 대를 이어 치고 나오는, 그리하여 결국에는 새롭게 되살리는 전통이야말로 재즈라는 예술 형식이 갖는 생명력이며 매력이다. 그것은 과거와의 대화이며, 재즈라는 예술을 통하여 구현되는 살아 있는 변증법이다.

따라서 그것은 복고주의가 아니다. 작품 생산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팝 음악과 재즈 사이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이 점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효과의 측면에서도, 효율성의 측면에서도 재즈 특유의 의미심장한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다.

특히 재즈의 혁명기때, 그 전통은 혁신적인 음악이 세상을 향해 자신을 알리는 가장 든든한 디딤대 구실을 하기도 한다. 1940년대에 찰리 파커가 비밥이라는 혁명으로써 당대 재즈계를 발칵 뒤집었을 때, 이 전통은 특히 효과적이고 커다란 힘을 발휘했다.

당시 그가 들고나왔던 곡이 낸시 해밀턴 Nancy Hamilton의 작사에 모건 루이스 Morgan Lewis 작곡의 저 높이 달은 뜨고 How High the Moon였다. 이 곡은 말하자면, 당시 일대를 풍미했던 경쾌한 유행가였다. 파커는 그 곡을 완전 비밥식으로 변주하면서 아예 제목까지 야릇하게 바꾸었다. 조류학 Ornithology으로.

잘 알려진 그 곡에 대한 급진적 해석은 갓 태동한 비밥이 어떤 음악인가를 강렬하게, 효과적으로 알렸다. 이후 그 곡에는 새로운 전통이 생겨나 하나의 강인한 맥을 이루게 된다. 즉, 당대 일류 아티스트들이 뒤이어 그 곡을 자기만의 개성대로 재해석하게 된 것이다.

다음은 그러한 재해석판 저 높이 달은 뜨고중 대표작들만을 발표순으로 나열한 것이다. 기회가 닿는 대로, 이 작품들을 꼭, 그리고 모두 다(!) 구해서 경청해 보시기 바란다. 왜냐하면, 거듭 이야기하는 바이지만 재즈를 올바르게, 또 빠르게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적극 활용하자. 재즈란 어떤 음악인가에 대한 을 확실하게 잡아, 올바르게 듣는 귀가 반드시 트일 것이다.(곧이어 열거되는 음반들은 모두 국내에서도 조금만 신경 쓰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것들만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1. 찰리 파커의 조류학: 파커(알토 색소폰), 허브 포메로이(트럼폣), 미확인(피아노 베이스, 드럼). 1954년 1월 18일, 보스턴의 하이 햇.
  2. 찰리 파커의 조류학: 파커, 쳇 베이커(트럼펫), 지미 롤스(피아노), 카슨 스미스(베이스), 셸리 몬(드럼). 1953년 11월 5일, 오리건 주립대.
  3. 사라 본의 보컬 저 높이 달은 뜨고: 어니 윌킨스 악단, 195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