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 길레스피와의 대화 — 개혁가와 순교자의 밤바다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거장,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의 밤바다 대화가 그들의 삶과 예술에 대한 깊은 통찰을 던진다. '삶에 2막은 없다'는 통찰처럼, 파란만장했던 찰리 파커의 비범한 인생과 그가 재즈에 미친 혁명적인 영향, 그리고 불후의 뮤지션으로 기억되는 이유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파헤친다.

In a nutshell

    디지 길레스피와의 대화: 개혁가와 순교자의 밤바다

디지 길레스피와의 대화: 개혁가와 순교자의 밤바다

「자네만큼이나 사랑받는 연주자가 조금 늦거나 딴짓을 한다고 해서, 어떻게 그렇게 냉정하게 내쫓을 수 있느냐고? 나는 어떻게 그렇게 그룹을 오래 유지하고 이끌 수 있느냐고?」 (파커, 바보처럼 헤헤…… 웃는다.)

「백인들이 바라는 대로 되기 싫어서! 백인들은 검둥이가 무책임하게 구는 걸 보면서 내심 즐거워하지. 검둥이는 다 그렇고 그런 놈들이라고 하면서. 난 그들에게 절대로 그런 만족감을 안 주기로 했어!」

(파커, 이 말을 듣고는 곤혹스러워한다.)

(파커, 더욱 낭패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디지, 얼굴을 펴며)

「그게 내 비결이야」

(디지, 웃으며)

「우린 동지야. 난 개혁가고 자넨 순교자일 뿐이지.」

(사이)

「세상은 언제나 순교자를 더 오래 기억하지.」

(바다로 시선을 돌리며)

「자네가 죽으면 모두 자넬 찬양할 거야」

디지는 참으로 처음 본심을 털어놓은 것이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은 깊은 통찰을 한다.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자넬 철저히 매장시키고 나서, 그리워할 거야! ……내 비결이라 …… 내 비결은 말이야,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들의 기대에 저항할 거라는 거야!」

이 말을 들은 파커는 디지의 어깨에 손을 얹어 툭툭 치며 웃는다. 그리고 머리를 디지의 어깨에 기댄다.

이 밤 바닷가 에피소드는 상당 부분 꾸며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파커와 디지라는 재즈사 최고의 쌍둥이를 빨리, 또한 바르게 이해하는 데에는 참으로 예리한 시추에이션을 제공한다. 또한 그것은 천재와 보통 사람, 그리고 예술과 삶이라는 고전적 대립 명제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그러면 우리는 파커라는 한 걸출한 재즈 뮤지션이 보여준 그 비범함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 비범함이란 예술은 물론, 삶 그 자체에서의 비범함이다.

이와 관련하여 영화 제작사 워너 브라더스 사가 바른 이해의 단서를 먼저 제시하고 있어, 이채롭기까지 하다. 본 영화에 들어가기 바로 전에 쭉 펼쳐지는 자막이 그것이다.

There are no second acts in American lives.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가 미국 사회의 속성을 통찰한 이 말 뒤에는 방송사에서 붙인 해석이 이어진다.

미국인의 삶에 2막이란 없다.

극적이며 강렬한 삶이 파커라는 한 인간을 통하여 실제로 구현된 것이라는 점이 그렇게 암시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매번 달랐던 그의 재즈처럼.

그렇다면 파커는 재즈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 이제는 어느덧 책의 말미다. 마지막으로 그를 객관적으로 조명해 볼 차례가 되었다. 그 삶의 파란만장함에서 충분히 예상되는 주관적 윤색의 가능성은 사상(舍象) 하고,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사실들을 모아보자. 결국 파커는 불후의 재즈 뮤지션으로 기억되고 평가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1989년 판 재즈 길잡이 The Jazz Handbook 중 찰리 파커 부분의 완역이다.

  • 출생: 1920년 8월 29일. 미국, 캔자스시티.
  • 사망: 1955년 3월 12일. 미국, 뉴욕 주, 뉴욕시.
  • 분야: 알토•테너 색소폰, 작곡.
  • 취입 경력: 1941-1954.
  • 애칭: 버드 Bird, 야드 버드 Yardbird, 야드 Yard.

음악의 발전과 혁명적 계기 모두가 일개 특정 뮤지션의 영향 덕분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1940년대 중반은 실로 재즈의 대변혁기였다. 그때는 재즈가 대중을 위한 유흥 음악, 즉 스윙에서 연주자 우선의 비밥으로 그 표정을 서서히 바꾸어 나가던 탈각의 시절이었다. 우선 시대가 큰 인물을 요구했다. 그에 걸맞은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은 한둘이 아니다. 콜먼 호킨스(색소폰)와 찰리 크리스천(기타)처럼 이미 확고부동한 자리에 올라 있었던 선배 격 인물들은 디지 길레스피(트럼펫), 셀로니어스 몽크(피아노), 버드 파웰(피아노) 그리고 찰리 파커 등의 뛰어난 후배들과 함께 작업하며 진정 새로운 음악을 모색해 나갔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로 지목되는 인물이 바로 파커이다. 찰스 크리스토퍼 파커 주니어 Charles Christopher Parker Jr.(본명)의 인생행로는 어린 나이에 굳어졌다. 희망이라고는 한 움큼도 보이지 않는 흑인 사회에서 파커는 겨우 십대 중반, 마약에 빠졌다. 이어 그는 열다섯에 학교를 박차고 나와 악사 생활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음악 생활 초기에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으나, 날이 다르게 향상해나갔다. 그리고 제이 맥샨 밴드에 입단한 1937년, 그는 동료들보다 유독 돋보이는 연주자로 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