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환 — 즉흥의 주체 Ⅰ

나의 즉흥은 완전 즉흥이다. 주제도 안 주고, 알아서 만들어간다. 이것이 프리의 즐거움이다.

In a nutshell

    즉흥의 주체
      즉흥(IMPROVISATION)Ⅰ(즉흥의 주체)

즉흥의 주체

즉흥1.png

©김지곤

즉흥(IMPROVISATION)Ⅰ(즉흥의 주체)

이제 진정으로 심각한 문제, 즉흥이 남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최고의 가치는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아름다움이 없으면 가치도 없다. 고양이가 피아노 건반을 지나가도 소리 나는데, 이를 두고 즉흥이라 하지 않는다. 아름답지 않으므로.

나는 왜 즉흥을 하는가?

먼저 허무해서, 즉 ‘세상에 남기기 싫어서’라는 이유를 들 수 있다. 다음으로, ‘진짜 완벽하게 영원히 남기고 싶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비슷한 크기로 남는다. 중요한 사실은, 이 둘은 결국 만날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동전의 양면이다.

나의 즉흥은 완전 즉흥이다. 주제도 안 주고, 알아서 만들어간다. 합주 형식의 즉흥에서는 언제 끝낼지 서로 아무 약속도 없다. 별안간 깜짝 놀라게 하고, 갑자기 끝낸다. 바로 이것이 프리의 즐거움이다.

결국 각자의 음악 세계를 더 찾아야 한다는 것. 바로 우리의 숙명이다.(이 지점에서 키스 자레트가 즉흥이라는 문제를 두고 했던 말을 상기시켜 둘 필요가 있다. “ 1990년대 말에 내 건강이 매우 좋지 못했다는 얘기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난 더 이상 곡을 쓰지 않는다. 당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것은 결국 ‘즉흥 연주’뿐이란 사실을 깨닫게 됐죠. 남아 있는 모든 에너지를 바로 거기에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더욱 깊어진 제천은 프리의 어려움을 알고 있다. 굉장히 조심스러워 한다. 그 같은 탐색의 여정에서 옛날에 내가 그랬듯 절망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행복을 위한 탐색이다. 그러나 겸손해야 한다. 그 길이 어려운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절실히 느낀 게 있다. 바로 나 자신의 왜소함이다.

수많은 연주와 즉흥 끝에 지금 와서 보니 내가, 우리가 너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 겨우 즉흥의 문을 연 것 같다.

어떤 일본 평론가가 “강태환(혹은 강태환이란 음악적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나는 음악의 수재가 아니다. 프리 재즈의 ‘free’에 대한 의문을 찾는 사람일 뿐, 음악이란 단어가 있기 전의 소리를 끄집어 내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내 음악은 규칙에 넣으려는 음대생이나 평론가에게는 가장 어려운 음악이다.

먼저 상대가 내는 소리를 절대 음감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는 출발점이다. 여기에다 화음까지 즉흥으로 구사해야 진정한 즉흥 합주라 할 수 있다. 대중 음악이나 클래식의 화음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런 데에 매달리지 말고 찰나의 느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다음의 진행을 예견하고 거기에 대비할 수 있으니까.

우리에게 악보란 없다. 그것은 작곡가들이 거듭하는 수정과 퇴고 작업을 생략한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논리적이며 엄청난 준비가 필요한 작업이다.

그것이 선(禪)의 경지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사실 내 자신도 어렵다. 사전 약속은 없지만 다음 진행을 미리 보게 되는, 심오한 정신 상태가 될 때가 있다. 그 찰나적 인식에 닿는 순간, 일순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 든다.

손님들은 객석에 다 찼는데 영감이 안 떠오른다면, 이보다 난처한 일이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사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한 작업이다. 혼자서 즉흥을 연습하다 만든 곡을 앙상블에 쓰기도 하는 것은 그래서다.

즉흥은 결국 소박한 의미에서의 예술이란 문제와 통한다. 예술이란 새롭고, 호감을 주며, 좋은 영향을 줘야 한다는 점에서. 연구와 기록은 이후의 문제인 것이다.(그의 현장성, 예술가 우선주의는 절대적이다)

즉흥의 과정은 크게 셋으로 나뉘는데, 예상치 못하게 깜짝 놀래는 부분, 의견 충돌, 반격 부분, 이 세 가지다. 이 논리대로 말한다면 팝 음악이란 의견 충돌이 배제된 세계다. 우리가 싸울 때는 일반인들이 안다. 그러나 싸움만 하는 주자는 관객들이 피곤해 하는 법이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빨리 들러가 먹는 맛을 어떻게 알겠느냐?(그는 진정한 즉흥의 재미를 남보다 빨리 진미를 맛본다는 것에 비겼다.) 평론가가 설명한다면 이미 그 음악은 포퓰러 해졌다는 증거다(생성의 현장을 벗어난 즉흥이란 가치가 격감한다는 것이다).

Subscribe

Jazzaje의 정원에서 최신 글과 업데이트를 받아보세요.